제3호
2026.08.27
현대소설

막내를 찾습니다

곽재민 · 문장웹진 2025년 1월호
사람이 사라졌을 때 조직은 왜 그가 견딘 고통보다 사라진 물건부터 찾는가.

정독 확인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장웹진에 합법적으로 공개된 작품 전문을 첫 문장부터 결말까지 읽었습니다. 아래에는 주요 사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막내를 찾습니다〉는 한 사람을 찾는 추적극처럼 출발하지만, 끝내 발견되는 것은 ‘막내’라는 자리를 유지하려고 서로의 얼굴을 지워 온 노동의 구조다.

행복을 편집하는 사람들의 불행

방송 프로그램 〈행복을 찾아서〉의 작가들은 출연자의 복잡한 삶에서 쓸 만한 문장을 골라 밝은 이야기로 배열한다. 이혼한 시장 상인의 외로움과 돈으로만 이어지는 가족관계도 방송 안에서는 고생을 알아주는 가족의 온기로 다듬어진다. 편집하지 않으면 세상이 너무 차갑다는 화자의 믿음은 일면 다정하다. 그러나 그 다정함은 타인의 삶을 방송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어 놓는 기술이기도 하다.

더 날카로운 점은 같은 편집이 사무실 안의 막내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주말 노동을 거부하고 커피 심부름을 힘들어한 말은 맥락을 잃은 채 버릇없는 불평으로 압축된다. 밤새 만든 자료가 몇 초 만에 폐기되고 아이디어를 빼앗긴 일은 삭제된다. 프로그램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듯 조직은 착취의 기록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바꾼다. 방송의 편집 문법과 노동의 위계가 정확히 겹치는 순간이다.

좋은 선배라는 자기 서사의 균열

화자 영진은 노골적인 악인이 아니다. 막내의 하소연을 들어 주고, 지친 사정을 헤아려 전화를 두 번 걸지 않으며, 선배들의 욕설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는 부당함을 설명하지 않은 채 적응시키고, 잡무를 ‘기본’이라 부르며, 막내가 사라지자 자신의 일이 늘었다는 사실부터 체감한다. 선의와 공모가 한 사람 안에서 충돌한다.

막내가 익명 단체방의 ‘나쁜 선배 목록’에서 영진의 이름을 봤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반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친절했다는 기억은 다른 누군가에게 가한 침묵을 지워 주지 않는다. 영진이 살가웠던 대상은 어쩌면 끝까지 버틸 사람뿐이었다는 그의 자각은 관계 윤리의 핵심을 찌른다. 도움을 받을 자격마저 조직에 남을 가능성으로 평가했다면, 그 친절은 돌봄이면서 인력 관리이기도 했다.

도망은 무책임한가

막내는 인수인계도 통보도 없이 사라진다. 동료에게 일이 전가된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을 무조건 영웅적인 저항으로 부르기는 어렵다. 사회에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영진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소설은 곧 더 근본적인 질문을 돌려준다. 계약서도 쓰지 않고 주말과 밤을 당연히 요구하는 회사가 노동자에게만 규칙과 책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여기서 ‘도망’은 성격 결함이 아니라 공식적인 퇴로가 봉쇄된 사람이 만드는 비공식 출구가 된다. 막내는 자기 흔적을 지우고 산과 절로 향하지만, 그것은 낭만적인 해방이 아니다. 가족에게 실패를 말하지 못하고 엉뚱한 수련에 기대야 할 만큼 고립된 선택이다. 조직은 퇴사를 배신으로 부르고, 가족 앞에서는 그 퇴사가 수치가 된다. 막내에게 남은 자유는 사라지는 방식뿐이다.

법인카드가 가리킨 진짜 의심

사라진 법인카드 때문에 막내는 절도 가능성까지 의심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카드를 쓴 사람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왕작가다. 액수는 작지만 의미는 크다. 조직은 권한이 적은 사람의 불평은 인격의 결함으로 확대하고, 권한이 큰 사람의 사적 사용은 애매한 금액으로 축소한다. 의심은 증거가 아니라 위계를 따라 흐른다.

영진 역시 카드의 행방을 좇으면서 막내의 고통을 뒤늦게 읽는다. 떨어진 휴지 디스펜서 뒤의 본드와 테이프는 특히 오래 남는다. 사라진 비품은 훔친 흔적이 아니라 망가진 사무실을 어떻게든 붙여 두려 한 노동의 흔적이었다.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수선이 사라지자, 남은 사람들은 그것을 결손으로만 계산한다.

끝내 번역된 한 문장

마지막 방송에서 해녀의 제주어는 “나 없으면 못 살지, 이렇게 곁에 있어도 못 사는데”라는 뜻으로 자막화된다. 막내가 투덜거리면서도 해낸 작업이다. 이 문장은 영진과 막내의 관계에도 겹친다. 영진은 막내가 없으면 잡무를 떠안아야 하지만, 막내가 곁에 있을 때는 그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은 다르다.

나는 이 결말이 화해를 서두르지 않아 좋았다. 영진이 막내에게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한다고 해서 지난 공모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프로그램 폐지도 구조를 개선한 결과가 아니라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경영 판단일 뿐이다. 소설은 한 사람의 각성으로 제도가 손쉽게 바뀐다는 위안을 주지 않고,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 묻는 두 사람을 멈춘 화면 앞에 남겨 둔다.

반론과 남은 감상

한편 막내의 말을 거의 모두 옳은 것으로 배치하고 선배들을 위선적으로 그린 구도가 다소 선명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방송 제작의 실제 협업에는 피할 수 없는 허드렛일과 갑작스러운 일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겨누는 것은 잡무의 존재 자체보다 그 부담이 가장 약한 사람에게만 내려가고, 보상·계약·발언권 없이 충성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우리 때는 더 심했다’는 설명은 고통의 필요성을 증명하지 못한다.

읽고 나서 가장 불편했던 인물은 왕작가보다 영진이었다. 왕작가의 폭력은 알아보기 쉽지만, 영진의 친절은 나 자신의 태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규칙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규칙을 전달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빈자리를 채울 기능을 찾는다는 뜻이 되지 않으려면, 먼저 그 사람이 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물어야 한다.

공개 원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광장 문장웹진 — 곽재민 〈막내를 찾습니다〉

공개 근거·읽은 범위 ·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장웹진의 2025년 1월호 공식 작품 페이지에서 제목부터 마지막 문단과 작가 소개까지 공개된 전문 전체를 확인했습니다.

원문을 재수록하지 않고 필요한 사건만 요약하여 독자적인 감상과 비평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