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호
2026.08.30
현대소설

늦은 새해

주나영 · 문장웹진 2026년 8월호
말하지 않음으로 지킨 평형은 누구의 마음을 바깥에 세워 두는가.

정독 확인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장웹진의 공식 공개 전문을 제목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읽었습니다. 아래에는 주요 사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늦은 새해〉에서 침묵은 상처를 덜 주는 배려이면서, 대답할 책임을 미루는 회피다. 가족은 정확히 기억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어긋난 기억 앞에 머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창문을 가린 새해

발리의 ‘침묵의 날’을 맞아 호텔은 빛과 소리를 줄이고 창문을 검은 시트지로 가린다. 그곳에 남편과 화자, 남편의 딸 혜리가 함께 머문다. 세 사람은 가족이 될 예정이지만 아직 서로를 부르는 말도, 함께 기억할 과거도 충분하지 않다.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하루는 이들이 피하던 관계 안에 꼼짝없이 머물게 한다.

직원이 시트지의 들뜬 가장자리를 계속 눌러도 다시 뜨는 첫 장면은 이 가족의 상태와 닮았다. 남편은 여행 일정과 식단, 선물과 결혼식 초대를 빈틈없이 준비하지만, 준비의 가장자리에서는 혜리의 거절 가능성과 화자의 소외가 자꾸 드러난다. 그는 관계를 정돈하는 데 능숙하면서도, 정돈되지 않는 마음 앞에서는 쉽게 말을 잃는다.

돌봄과 통제는 얼마나 가까운가

남편의 애정은 조사와 계획의 형태를 띤다. 딸이 갈 학교의 날씨와 공항을 검색하고, 오래된 보드게임과 배 모형을 챙기며, 식사와 운동을 세밀하게 배열한다. 이것은 떨어져 지낸 시간을 만회하려는 성실한 돌봄이다. 동시에 혜리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자신이 기억하는 딸을 현재에 맞추려는 통제이기도 하다.

혜리가 크리켓을 좋아한다고 믿었던 장면이 그 모순을 선명하게 만든다. 혜리는 빠지지 않고 했을 뿐 규칙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남편이 보존한 정보는 틀리지 않았지만 진실하지도 않다. 누군가를 사랑해 모은 사실이 그 사람의 마음과 같지는 않다. 작품은 무관심한 아버지를 고발하는 대신,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오독할 수 있다는 더 불편한 문제를 보여 준다.

평형을 지키는 사람의 침묵

화자는 혜리에게 냅킨을 밀려다 멈추고, 이름을 부를 때는 목소리가 작아진다. 친밀해지고 싶어 혜리의 게시물을 살피고 남편에게 들은 기억을 메모하지만, 질문이 경계를 넘을까 번번이 입을 닫는다.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지는 평형”을 믿는다. 이 태도는 새엄마라는 자리를 함부로 차지하지 않으려는 조심성이다.

그러나 혜리가 결혼식에 자신이 올 거라고 아빠가 믿는지 묻는 순간, 침묵은 배려만으로 남지 않는다. 대답하지 않으면 갈등은 폭발하지 않지만, 혜리는 혼자 판단해야 한다. 화자가 어머니의 이메일을 하루 늦게 열었던 일과 혜리의 질문을 흘려보내는 일은 닮았다.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지연이 때로는 상대를 문밖에 더 오래 세운다.

틀린 기억도 사랑의 증거인가

화자의 어머니는 오래전 떠난 뒤 이메일과 병원비로 가족 안에 돌아오려 한다. 편지는 늘 기억을 묻지만, 그 안에 적힌 장면은 화자의 기억과 자주 어긋난다. 마지막 편지에서 어머니는 딸이 노란색을 좋아했다고 쓰지만 화자는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이 한 문장은 모녀가 공유한다고 믿었던 과거의 바닥을 조용히 흔든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혹독한 이주 노동의 버스 안에서 사탕 하나를 고르며 딸을 떠올린 마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 사랑은 정확하지 않다. 작품은 정확성과 진심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않으면서도, 진심이 부정확함을 면책하지도 않는다. 사랑받았다는 증거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상처가 한 문장 안에 함께 남는다.

고장 난 이동과 늦은 시작

혜리가 탄 버스도, 어머니가 탄 버스도 고장 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 펭귄은 흔들린 사진 속 점으로 남고, 어머니의 귀환은 배우자의 죽음 뒤에야 이루어진다. 남편의 결혼식 역시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졌다. 이 작품에서 가족은 늘 늦게 출발하거나 잘못된 정류장에 서 있다.

그래서 제목의 ‘새해’는 깨끗한 초기화라기보다 뒤늦게 주어진 재시작의 가능성에 가깝다. 혜리는 청첩장을 곧바로 펼치지 않지만 결국 방으로 가져간다. 받아들였다는 약속도, 거절했다는 선언도 아니다. 작품은 화해를 완성하지 않고 봉투를 손에 든 채 문을 나서는 동작까지만 보여 준다. 관계 윤리의 핵심을 용서의 결론이 아니라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 시간에 두는 결말이다.

반론과 남은 감상

화자의 절제를 무조건 성숙한 태도로 읽기는 어렵다. 그는 남편이 딸에게 쏟는 관심 옆에서 잊힌 그릇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혜리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는다. 갈등을 피하는 동안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요청을 함께 지워 버린다. 반대로 이 침묵을 비겁함으로만 비난하면, 새엄마가 친밀함을 요구할 때 생길 수 있는 침범과 강요를 가볍게 보게 된다.

나는 마지막에 화자가 어두운 복도로 나가 혜리의 방을 찾지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이 오래 남았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 것은 여전히 회피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 침묵 바깥으로 한 걸음 나왔다. 가족은 완벽한 말을 찾은 뒤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 기억했고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상대의 문 앞까지 가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공개 원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장웹진 — 주나영 〈늦은 새해〉

공개 근거·읽은 범위 ·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학광장 문장웹진 2026년 8월호의 공식 소설 페이지에서, 제목과 작가 소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전문 전체를 확인했습니다.

원문을 재수록하지 않고 필요한 사건만 요약하여 독자적인 감상과 비평을 작성했습니다.